삶의 지혜

삶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시간

만샘 2025. 11. 20. 04:50
사고후 내 오토바이 모습

우연한 사고였다.
그 순간은 길지도 않았고, 나에게 선택할 여지도 없었다.
차량과 부딪히는 충격이 지나가자 몸은 바로 움직임을 멈췄다.
바닥에 눕혀진 채로 호흡만 거칠게 이어가며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파악하려 애썼다.

병원에 도착해 검사를 마치고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현실이 조금 늦게 다가왔다.
다리뼈가 부러지고 발목의 안쪽·바깥쪽 뼈가 동시에 어긋났다는 설명,
무릎과 온몸에 퍼진 타박상,
이 모든 말이 나에게는 한 박자씩 늦게 들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목숨은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다음에야 내가 입은 상처의 깊이가 비로소 실감되었다.

수술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수술실로 이동하는 침대에 누워 깊게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그동안 얼마나 빠르게만 살아왔는지를 떠올렸다.
계획을 세우고, 일정에 맞추고,
몸의 신호를 억누르며 앞으로만 가던 시간들.
피곤하다는 느낌이 오면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이라 여기며 지나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 몸이 먼저 한계를 선언했다.

수술 이후의 시간은 길었다.
누워 있는 동안 통증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숨을 가다듬으며 견뎠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면서
생각은 이전보다 더 넓은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몸은 움직임을 잃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오래 미뤄 두었던 질문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중 하나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었다.

이 질문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아마 오래전부터 내 안쪽에서 쌓여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바쁜 일상과 사건들에 가려져
표면으로 떠오를 틈이 없었을 뿐이다.
몸이 멈추니
마음 한쪽에 오래 머물러 있던 생각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회복 과정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었다.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통증이 올라왔고,
물을 마시기 위해 상체를 조금 일으키는 일조차
하루 중 가장 힘든 순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불편함 속에서
삶을 다시 보는 시선을 얻게 되었다.

이전에는 아무 의미 없이 지나쳤던 동작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걷는다는 것, 손을 뻗어 물건을 잡는다는 것,
잠깐 일어나 창밖을 바라본다는 것.
이 단순한 움직임들 속에
삶의 기본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회복 과정에서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병실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작은 빛,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
간호사가 건네는 짧은 한마디.
이전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내 삶의 장면처럼 떠올랐다.
삶은 거대한 사건보다
이런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나는 사고 이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사소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하나하나 제 모습을 드러냈다.
불편함이 계속되었지만
나는 그 불편함에서조차
감사의 마음을 느낄 순간이 생겼다.
“아프다”는 감각조차
살아 있음의 징후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회복하는 동안
삶의 구조는 서서히 재편되고 있었다.
내 의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먼저 방향을 바꾸고,
그 뒤를 따라 마음과 생각이 천천히 새로운 자리를 찾는 과정이었다.
예전에는 무심하게 지나가던 인간관계가
지금은 더 정확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내가 진짜로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들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창작 활동을 비롯한 일상의 방식들도
사고를 겪고 나니 전혀 다르게 보였다.
무엇을 위해 시간을 쓰고,
어떤 방향으로 인생을 배치해야 할지
새로운 질문들이 생겨났다.
답을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회복 과정 자체가
그 답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었다.

앞으로의 삶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다시 짜일 것이다.
그 변화가 불안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는
그 불안보다 감사가 먼저 떠오른다.
살아 있다는 사실,
다시 걸을 수 있는 날이 온다는 사실,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해
삶을 새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모두 감사의 이유가 되었다.

사고는 우연이었지만
그 우연이 남긴 배움은 분명했다.
나는 이전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변화는
나를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앞으로의 시간은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게,
그리고 지금보다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사고 이후의 시간은
“새로운 삶을 선택하라”는 요청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요청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준비는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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