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3

"도시 속 작은 봄 — 피어오른 다섯 송이의 이야기"

붉은 복사꽃이 가장 먼저 찾아왔다.긴 겨울 끝, 아직 차가운 벽을 등지고조심스럽게 가지마다 붉은 꽃망울을 터뜨린다.희망이라는 단어조차 잊고 있던 시간 속에서복사꽃은 조용히 속삭인다."다시 시작해도 괜찮아." 노란 개나리가 뒤따랐다.저녁 햇살이 스미기 시작한 골목 어귀,담장 너머로 번지는 환한 노란 물결.서툰 봄빛과 서툰 마음이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처럼,개나리는 겨울을 지나온 모든 존재에게기쁨을 선물한다. 라일락은 조금 늦게, 그러나 잊을 수 없는 향기로 온다.투명한 하늘 아래, 작은 보랏빛 손길들이오래전 첫사랑처럼 다가온다.무심히 스쳐도 잊히지 않는 향기.라일락이 피어오르면,그 시절 우리도 다시 피어난다. 스노볼은 푸른 기억처럼 고요히 모습을 드러낸다.연둣빛 공기 속에 맺힌 작은 구슬들.한 알 한 알..

여행과 여유 2025.04.30

봄, 도시를 피우다 – 거여동 꽃길 산책과 저녁의 기억

봄은 시나브로 다가온다.차가운 바람이 누그러지고, 코끝에 닿는 공기의 향이 달라질 때쯤,도시의 어느 골목에서도 봄은 제 존재를 잔잔히 드러낸다. 며칠 전, 친구와 저녁을 먹기 위해 거여동으로 향했다.평소 자주 다니던 거리였지만, 그날따라 눈길을 사로잡은 풍경이 있었다.길가에 놓인 화분들, 그 안에서 피어나는 꽃들이 유난히 생생하게 보였다. 꽃집 가판대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여인네 나들이 치장처럼 피어 있었다.진홍색 버베나, 자주색 로벨리아, 그리고 주황빛 한련화가 저녁이 다 되었는데도아침 인사처럼 생기 있었고,화분 옆에는 작은 둥근 잎사귀들이 봄기운을 머금은 듯 생기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그 앞에서 나는 꽃빛의 매혹에 빠져 한참을 서성였다.저녁 식사 메뉴는 생선구이를 시켰다.식사를 하며 짭짤한 구이..

여행과 여유 2025.04.12

성당 앞 목련, 봄이 왔다는 가장 순수한 신호

봄이 왔다, 그리고 그곳엔 목련이 피어 있었다서울의 주택가 한 골목을 걷다 보면문득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따뜻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아직은 차가운 나무 가지 위에하얗게 목련이 피어나는 그 장면은어떤 말보다 먼저봄이 도착했음을 알려준다.내가 이 장면을 만난 곳은오래된 벽돌 성당 앞이었다.나무 한 그루가 성당의 벽을 타고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었고,그 끝마다 피어난 목련꽃은정화된 영혼처럼 순백의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었다.성당 특유의 고요한 분위기와목련의 깨끗한 색감이 어우러져도심 속에서 잠시 멈추고 싶은 풍경이 되었다.봄은 늘 소란스럽게 찾아오지 않는다.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우리의 일상 한편에 스며든다.그중에서도 목련은언제나 봄의 가장 첫 문장을 써 내려가는 꽃이다.강한 햇살 없이..

여행과 여유 202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