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복사꽃이 가장 먼저 찾아왔다.긴 겨울 끝, 아직 차가운 벽을 등지고조심스럽게 가지마다 붉은 꽃망울을 터뜨린다.희망이라는 단어조차 잊고 있던 시간 속에서복사꽃은 조용히 속삭인다."다시 시작해도 괜찮아." 노란 개나리가 뒤따랐다.저녁 햇살이 스미기 시작한 골목 어귀,담장 너머로 번지는 환한 노란 물결.서툰 봄빛과 서툰 마음이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처럼,개나리는 겨울을 지나온 모든 존재에게기쁨을 선물한다. 라일락은 조금 늦게, 그러나 잊을 수 없는 향기로 온다.투명한 하늘 아래, 작은 보랏빛 손길들이오래전 첫사랑처럼 다가온다.무심히 스쳐도 잊히지 않는 향기.라일락이 피어오르면,그 시절 우리도 다시 피어난다. 스노볼은 푸른 기억처럼 고요히 모습을 드러낸다.연둣빛 공기 속에 맺힌 작은 구슬들.한 알 한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