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 금기의 장막 너머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러시아는 제재와 고립의 언어로 설명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제재망은 더욱 촘촘해졌고, 한국 역시 그에 동참했다.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러시아를 논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위험하게 느껴지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러시아는 여전히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갖고 있으며, 에너지와 자원에서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리적으로는 한국과 맞닿아 있는 북방의 거대한 이웃이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만을 바라보며 균형을 잃는 순간, 러시아라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지를 줄이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금기를 넘어서야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2.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
러시아는 한국에 있어 위기이자 기회다. 천연가스와 석유, 희토류와 곡물은 한국의 산업과 식량 안보를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북극항로는 한국 수출입에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는 물류망이다. 러시아 극동 지역은 아직 미개발 상태로, 농업·인프라·의료 분야에서 협력의 잠재력이 크다.
과거 우주·군수기술 협력에서 출발했던 경험은 민간 기술, 교육, 문화 교류로 확장될 수 있다. 한국이 대중·대미 의존에서 벗어나려면 북방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도 같은 흐름을 읽은 이가 있었다. 북방외교를 오래 강조해 온 송영길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의 구상은 단순한 대러 협력이 아니라, 중국 일변도·미국 일변도를 넘어서는 전략적 다변화였다.
3. 다자외교의 균형추
한국 외교의 가장 큰 문제는 한쪽으로 과도하게 기운 의존 구조다.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지만 기술 유출과 정치 리스크가 늘 존재한다. 미국은 안보 파트너이지만 동시에 투자 압박과 관세라는 거래적 동맹으로 변모하고 있다. 두 축 모두 한국을 안정적으로 지켜주지 못한다.
이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러시아다. 러시아는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축이다. 완전한 해답은 아니지만 최소한 편중된 의존을 줄이고 선택지를 넓히는 효과가 있다.
나는 이미 「새로운 문명 구조를 위한 제안」이라는 글에서 단극 패권을 넘어 다극적이고 공생적인 질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러시아와의 협력은 그러한 새로운 문명 구조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극 구도만으로는 미래를 감당할 수 없다.
4. 철학적 해석 – 금기를 넘어서는 용기
외교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익과 선택의 문제다. 러시아를 무조건 배제하는 것은 도덕적 순결을 지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현실을 외면하는 위험이 도사린다.
금기는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금기를 넘어야 새로운 자유가 열린다. 한국이 러시아와의 협력을 고려하는 것은 곧 국제정치에서 주체성을 확보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는 한, 한국은 항상 타자의 틀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라는 선택지를 열어두는 것은 주체적 국가로서의 용기를 의미한다.
5. 구체적 가능성 – 합법적 범위에서의 협력
물론 현실의 제약을 무시할 수는 없다. 국제 제재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합법적이고 인도적인 협력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
- 에너지 공동 프로젝트, LNG·수소 협력
- 농업·식량 분야 공동 개발
- 의료·보건 협력, 환경 대응
- 교육·문화 교류
이러한 협력은 국제 규제의 테두리 안에서도 추진할 수 있다. 러시아는 단순한 금기가 아니라, 가능성의 땅이 된다.
6. 결론 – 새로운 문명 구조로 가는 길
한국 외교는 더 이상 한쪽에만 기댈 수 없다. 미국과 중국에 치우친 의존은 언제든 족쇄로 변할 수 있다. 러시아와의 협력은 단순한 양자 관계가 아니라, 한국이 새로운 문명 구조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의 일부다.
오래전부터 내가 강조해 온 북방외교와 러시아와의 협력은 주체적 국가로 서기 위한 필수적 선택지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 전략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남겨줄 새로운 질서와 자유의 기반이다.
결국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금기를 넘어 균형을 찾고, 새로운 문명 구조 속에서 주체적 국가로 서는 것. 러시아와의 협력은 바로 그 길 위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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