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고통을 피하려는 본능
인간은 상처를 통해 배우지만, 언제나 그 아픔을 피하려 한다.
육체의 상처가 자연히 아물듯 정신의 상처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대인은 고통을 ‘비정상 상태’로 규정하고 즉각적인 해결을 요구한다. 마음의 통증을 없애기 위해 종교를 찾고, 영혼의 결핍을 메우려 오컬트를 찾는다.
이 욕망은 본래 회복을 향하지만, 방향이 잘못되면 자기 파괴로 이어진다. 고통을 견디지 못한 인간은 타인에게 구원을 위탁하고, 그 순간부터 자유는 사라진다. 구원을 약속하는 자와 의존하는 자가 생기면, 그곳엔 반드시 지배와 사기의 구조가 따라온다.
Ⅱ. 고통을 회피한 문명
고대 철학은 고통을 인간 존재의 필연으로 보았다.
에픽테토스는 “고통을 판단하는 생각이 고통을 만든다”라고 했고, 불교는 ‘고(苦)’를 집착에서 비롯된 환상으로 설명했다. 인간은 고통을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존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근대 이후 문명은 고통을 제거 대상으로 바꾸었다. 의학은 병을 제거했고, 종교는 불안을 없애겠다고 약속했으며, 산업은 쾌락을 공급했다. 이렇게 ‘고통 없는 삶’이 새로운 이념이 되자 인간은 더 약해졌다. 감정의 회복력은 사라지고, 생각은 현실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문명은 고통을 없애려 했지만, 결국 고통에 예속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철학이 가르친 것은 ‘수용의 지혜’였으나, 현대는 ‘극복의 기술’만을 남겼다. 인간은 아픔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치유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치유란 아픔을 피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것을 끝까지 감당하는 과정이다.
Ⅲ. 두려움이 만든 환상
두려움은 인간 정신의 원초적 감정이다.
죽음, 상실, 불확실성은 본능적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이 두려움을 이용하는 체계가 곧 종교이자 오컬트다.
“두려움을 극복하라”는 말 아래, 그들은 영원한 구원을 거래한다.
그러나 두려움은 제거될 수 없는 감정이다.
두려움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지닌 경보 체계다.
그걸 억누르면 감정의 균형이 깨지고, 현실 감각이 흐려진다.
많은 종교가 공포를 통해 믿음을 조장하는 이유는,
두려움을 없애지 않고 지속시키는 것이 통제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고 두려움에서 비롯될 때, 인간은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그것이 교묘한 지배의 형태다.
정신의 회복은 두려움을 몰아내는 데 있지 않다.
두려움을 바라보고, 그 감정이 나를 지키기 위한 것임을 깨닫는 데 있다.
두려움을 견디는 힘이야말로 자유의 시작이다.

Ⅳ. 구원의 산업화와 사기의 탄생
인간의 불안이 시장이 된 것은 오래전부터였다.
중세 교회는 면죄부를 팔며 죄책감을 수입으로 바꾸었다.
그 구조는 이후에도 형태만 바꾸어 살아남았다.
심령술, 명상 단체, 영성 워크숍, 자기 계발 프로그램—모두 ‘고통 없는 삶’을 약속하며 인간의 불안을 재활용한다.
현대의 영성 산업은 포장만 다를 뿐, 본질은 동일하다.
‘마음의 해방’이라는 말 아래에 돈이 오가고,
‘우주의 진동’이라는 말속에는 인간의 공허가 숨어 있다.
이 구조의 핵심은 단순하다.
불안을 해소하지 않는다.
불안을 유지시켜야 다음 상품이 팔린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수록 더 쉽게 속는다.
그들은 구원을 산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두려움을 빌려 쓰는 계약을 맺는 것이다.
이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인간이 다시 자기 고통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고통을 타인에게 맡기는 순간, 인간은 다시 거래의 대상이 된다.

Ⅴ. 고통의 수용과 죽음의 인정
삶은 고통을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것은 형벌이 아니라 과정이며, 성장을 위한 통로다.
고통은 적이 아니라 나를 단련하는 교사다.
그것을 외면할 때, 인간은 현실과 단절되고 망상 속으로 빠진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받아들이면 두려움은 줄어든다.
죽음을 거부할수록 삶은 불안해지고, 종교적 구조는 그 불안을 이용한다.
지옥과 천국은 두려움을 제도화한 상징일 뿐이다.
죽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삶은 현재로 돌아온다.
결국 구원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인간이 잃어버린 구원은 고통을 견디는 내면에 있다.
그 내면의 회복력은 어떤 교리나 의식보다 강하다.
고통을 피하려는 인간은 영원히 구원을 찾지만,
고통을 받아들이는 인간은 이미 구원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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