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여유 23

성당 앞 목련, 봄이 왔다는 가장 순수한 신호

봄이 왔다, 그리고 그곳엔 목련이 피어 있었다서울의 주택가 한 골목을 걷다 보면문득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따뜻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아직은 차가운 나무 가지 위에하얗게 목련이 피어나는 그 장면은어떤 말보다 먼저봄이 도착했음을 알려준다.내가 이 장면을 만난 곳은오래된 벽돌 성당 앞이었다.나무 한 그루가 성당의 벽을 타고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었고,그 끝마다 피어난 목련꽃은정화된 영혼처럼 순백의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었다.성당 특유의 고요한 분위기와목련의 깨끗한 색감이 어우러져도심 속에서 잠시 멈추고 싶은 풍경이 되었다.봄은 늘 소란스럽게 찾아오지 않는다.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우리의 일상 한편에 스며든다.그중에서도 목련은언제나 봄의 가장 첫 문장을 써 내려가는 꽃이다.강한 햇살 없이..

여행과 여유 2025.04.11

없는거 빼고 다있는 마천시장, 오늘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마천시장, 오늘도 사람들로 북적인다주말임에도 마천시장은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좁은 골목 사이를 따라 이어지는시장 길에는 크고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좌우로 펼쳐진 가판대에는형형색색의 먹거리와 생활용품이빈틈없이 놓여 있다.사람들은 멈춰 서서 물건을 고르거나,주인과 흥정을 하며천천히 걸음을 옮긴다.이곳은 거여, 마천, 오금, 방이동 등인근 지역 주민들이 자주 찾는생활밀착형 전통시장이다.마트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필요한 것을 단골처럼편하게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장을 보러 일부러 찾는 사람도 많다.오늘 시장에 온 목적은 분명했다.집에 나물 반찬이 떨어졌고,오래간만에 '옛날 통닭'이 먹고 싶기도 했다.그중에서도 날개 부위는가장 좋아하는 부분인데,가게 앞에 갓 튀겨 낸 통닭이쌓여 ..

여행과 여유 2025.04.10

성내천, 봄 날의 꽃길을 걷다 – 커피 한 잔과 함께한 조용한 산책

햇볕이 좋았다.유난히 쨍하지도, 미세먼지가 껴 있지도 않은,그냥 걷기에 딱 좋은 봄날.친한 동생과 약속을 맞춰커피 한 잔을 들고 성내천을 함께 걷기로 했다.출발점은 ‘산체스커피’.요즘 SNS에서 유명세를 타면서한참을 줄 서야 겨우 커피를 받을 수 있는 곳인데,이 날은 운이 좋았는지 비교적 금방 커피를 손에 쥘 수 있었다.라테 한 잔, 블랙 아이스커피 한 잔.손안에 따뜻함과 시원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성내천은 한강의 지류이자서울 동남부, 송파구와 강동구 사이를 잇는 도시 속 자연 하천이다.과거에는 오염된 물길이었지만, 생태복원 사업을 통해이제는 사람들이 걷고, 자전거를 타고, 꽃과 하늘을 바라보며조용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입구는 여러 곳으로 열려 있어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스며들 듯 들어섰..

여행과 여유 2025.04.09

성당,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는 순간 – 오금동에서 마주한 작은 기억

밤 산책 중이었다.골목을 따라 조용히 걷던 중,고개를 들자 조용히 불을 밝힌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들어왔다.낯이라면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었을 풍경이었지만,밤은 전혀 다른 모습이라 시선이 저절로 그곳을 향했고 LED 조명으로 설치된 스테인드 글라스 느낌의 조형물은성당 건물 전체를 하나의 빛나는 설치미술처럼 보이게 했다.벽돌로 쌓인 외벽 위를 하늘을 향해 고개 들어 쳐다본 순간마치 잡지 표지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문득 오래전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어릴 적, 외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갔던 -기억도 가물한 성당의 풍경.향 냄새, 촛불, 그리고 조용히 기도하던 사람들.지금은 특정 종교를 따르지 않지만그때의 고요함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빛으로 지은 창,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미학성..

여행과 여유 2025.04.08

서울 야경 산책 – 올림픽 공원에서 만나는 조용한 빛과 공연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픽공원은낮에도 걷기 좋은 곳이지만,밤 산책이 주는 특별한 분위기는 따로 있다.도심 속에 넓게 자리한 이 공원은‘둘레길’을 중심으로 잘 정돈된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가볍게 걷기에도 좋고, 음악을 들으며 걷기에도 무리가 없다.특히 야간에는 주요 조형물과 입구, 나무들이 조명으로 밝혀져하루의 고단함을 정리하기에 제격이다.사진 속 장면은 올림픽공원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세계평화의 문’을 저녁 산책 중 마주한 순간이다.붉은 조명이 천장을 감싸며그림자처럼 바닥에 떨어지고,멀리서 보이는 무대 쪽에서는작은 야외 공연이나 거리 퍼포먼스가 펼쳐지기도 한다.올림픽공원 밤 산책이 좋은 이유는공간의 크기만큼이나 여유로운 시선과무리 없이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조용히 걸으며 음악을 듣기도 좋..

여행과 여유 2025.04.08

사진 한 장이 삶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인생 2막, 다시 나를 찾는 중

📸 이미지 © jooriank / EyeEm👉 https://www.eyeem.com/u/jooriank 오랫동안 학원을 운영해 왔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두게 되었다.그 결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이후의 시간은 더 무거웠다.아직 경제활동이 꼭 필요한 상황이기에이것저것 새로운 일들을 찾아야 했지만,'이제 뭔가 새롭게 시작해 보자'는 기대보다는앞으로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더 컸다.불안과 우울감이 뒤섞인 날들이 이어졌다.나이는 점점 들어가고, 여유는 점점 줄어들고,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지금도 그 불안과 초조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하지만 그 마음에 짓눌려 있기보다는,‘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시도해 보기로 했다.블로그를 시작했고,손그림으로 ..

여행과 여유 2025.04.08

서울의 밤, 그 풍경을 걷다 – 여행자를 위한 야경 명소 4선

서울의 밤, 그 풍경을 걷다 – 여행자를 위한 야경 명소 4선서울은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도시의 빛은 단순히 풍경을 비추는 조명이 아니라,그 안에 시간의 깊이와 사람들의 감정이 겹쳐진다.여행자라면 꼭 걸어봐야 할 서울의 밤길.그중에서도 빛과 물, 역사와 일상이 어우러진4곳의 야경 명소를 소개한다.서울의 ‘밤의 얼굴’을 만나볼 수 있는 곳들이다. 1. 롯데타워와 석촌호수의 야경 송파구 잠실에 위치한 롯데월드타워는서울의 랜드마크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밤이 되면 타워 꼭대기부터 천천히 불이 들어오고,그 빛은 곁에 있는 석촌호수의 물 위에 아름답게 반사된다.호수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조용하면서도 안전하고,빛과 물, 그리고 도시 건축이 어우러진 장면은사진보다 직접 눈으로 봤을 때..

여행과 여유 2025.04.07

도시 위에 피어난 연등의 빛

– 부처님 오신 날, 서울에서 만나는 고요한 축제밤길을 걷던 어느 날이었다.익숙한 거리였지만, 그날따라 무언가 달랐다.불 꺼진 건물의 외벽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연등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 작은 불빛들이 어두운 거리를 천천히 감싸며,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붉은 등, 노란 등, 초록 등, 파란 등…알록달록한 색의 조합이었지만 전혀 요란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박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이 있었다. 도시의 단단한 외관을 따라 조용히 퍼지는 빛은 무채색의 밤을 물들이고, 마치 도시가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이 연등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곧 다가올 부처님 오신 날을 알리는 상징이었다.부처님 오신 날과 연등의 의미부처님 오신 날은 음력 4월 8일로, 석가모니의 탄..

여행과 여유 2025.04.07

서울의 밤, 석촌 호수에서 마주한 봄빛 -봄은 이미 출발했다.

– 분홍빛 롯데타워와 벚꽃이 어우러진 저녁 산책서울의 봄이 시작되는 길목,바쁜 하루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끝낸 나는그대로 집으로 향하지 않고 잠시 석촌호수로 발걸음을 옮겼다.봄의 기운이 서서히 퍼지고 있던 그날,하늘은 천천히 어두워지고 있었고,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늘 익숙하게 지나던 거리였지만,그날의 공기와 조명, 그리고 호수 앞에 펼쳐진 장면은분명 다른 느낌을 주었다. 분홍빛을 머금은 롯데월드타워호수 가까이 다다르자마자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롯데월드타워였다.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그 마천루는어두워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은은한 분홍빛 조명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서울의 고층 빌딩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이 거대한 구조물은그 자체로 서울의 야경을 상징하는 존재다.하..

여행과 여유 2025.04.06

목련과 개나리, 봄날의 기억을 꺼내다

봄은 언제나 나를 사색하게 한다.찬바람이 물러가고, 가지마다 생명이 움트는 이 시기.나는 어김없이 어린 시절의 봄날을 떠올린다.햇살 아래 피어난 목련과 개나리는 그때의 추억을 불러오는 추억의 사진처럼내 안 깊은 곳에서 시간을 되돌린다.기억 속의 봄은 언제나 따스했다.개나리의 노란 물결이 골목길을 따라 흐르고,하얗고 고고한 목련은 하늘을 배경 삼아 싱그럽게 피어 있었다.그 꽃길을 아이와 아내의 손을 잡고 걸었던 날,그 장면은 내 안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풍경이다.목련 – '숭고한 사랑', '고귀함'목련은 내게 늘 어떤 절제된 품위를 떠올리게 한다.두툼한 꽃잎이 순백의 빛깔로 하늘을 향해 피어나는 그 순간,나는 삶에서 고결함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목련은 사랑을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마음을 지키는..

여행과 여유 2025.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