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여유 21

성내천, 봄 날의 꽃길을 걷다 – 커피 한 잔과 함께한 조용한 산책

햇볕이 좋았다.유난히 쨍하지도, 미세먼지가 껴 있지도 않은,그냥 걷기에 딱 좋은 봄날. 친한 동생과 약속을 맞춰커피 한 잔을 들고 성내천을 함께 걷기로 했다.출발점은 ‘산체스커피’.요즘 SNS에서 유명세를 타면서한참을 줄 서야 겨우 커피를 받을 수 있는 곳인데,이 날은 운이 좋았는지 비교적 금방 커피를 손에 쥘 수 있었다.라테 한 잔, 블랙 아이스커피 한 잔.손안에 따뜻함과 시원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성내천은 한강의 지류이자서울 동남부, 송파구와 강동구 사이를 잇는 도시 속 자연 하천이다.과거에는 오염된 물길이었지만, 생태복원 사업을 통해이제는 사람들이 걷고, 자전거를 타고, 꽃과 하늘을 바라보며조용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입구는 여러 곳으로 열려 있어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스며들 ..

여행과 여유 2025.04.09

성당,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는 순간 – 오금동에서 마주한 작은 기억

밤 산책 중이었다.골목을 따라 조용히 걷던 중,고개를 들자 조용히 불을 밝힌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들어왔다.낯이라면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었을 풍경이었지만,밤은 전혀 다른 모습이라 시선이 저절로 그곳을 향했고 LED 조명으로 설치된 스테인드 글라스 느낌의 조형물은성당 건물 전체를 하나의 빛나는 설치미술처럼 보이게 했다. 벽돌로 쌓인 외벽 위를 하늘을 향해 고개 들어 쳐다본 순간마치 잡지 표지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문득 오래전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어릴 적, 외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갔던 -기억도 가물한 성당의 풍경.향 냄새, 촛불, 그리고 조용히 기도하던 사람들.지금은 특정 종교를 따르지 않지만그때의 고요함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빛으로 지은 창,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미학..

여행과 여유 2025.04.08

서울 야경 산책 – 올림픽 공원에서 만나는 조용한 빛과 공연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픽공원은낮에도 걷기 좋은 곳이지만,밤 산책이 주는 특별한 분위기는 따로 있다.도심 속에 넓게 자리한 이 공원은‘둘레길’을 중심으로 잘 정돈된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가볍게 걷기에도 좋고, 음악을 들으며 걷기에도 무리가 없다.특히 야간에는 주요 조형물과 입구, 나무들이 조명으로 밝혀져하루의 고단함을 정리하기에 제격이다.사진 속 장면은 올림픽공원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세계평화의 문’을 저녁 산책 중 마주한 순간이다.붉은 조명이 천장을 감싸며그림자처럼 바닥에 떨어지고,멀리서 보이는 무대 쪽에서는작은 야외 공연이나 거리 퍼포먼스가 펼쳐지기도 한다.올림픽공원 밤 산책이 좋은 이유는공간의 크기만큼이나 여유로운 시선과무리 없이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조용히 걸으며 음악을 듣기도 좋..

여행과 여유 2025.04.08

사진 한 장이 삶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인생 2막, 다시 나를 찾는 중

오랫동안 학원을 운영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원을 그만하게 되었다.아직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사정이기에 이거 저거 해야만 했고,무언가 새로 시작해 볼 수 있다는 것보다는앞으로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더 컸다.불안과 우울감으로 하루하루가 편하지 않았다.늘어나는 나이와 줄어드는 여유 사이에서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감이 안 잡혔다.지금도 그 불안과 초조함은 잔존하지만,그래서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시도해 봤다.블로그도 시작했고,이모티콘도 그려보고,사진도 찍어봤고,GPT 인공지능이라는 낯선 기술도 접해 보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당연히 수익이 목적이었다.생계와 연결되지 않으면마음에 여유를 주기가 어려우니까.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사진을 찍는 시간이 이상하게 기다려졌다.‘이걸로 뭘 벌 수..

여행과 여유 2025.04.08

서울의 밤, 그 풍경을 걷다 – 여행자를 위한 야경 명소 4선

서울의 밤, 그 풍경을 걷다 – 여행자를 위한 야경 명소 4선서울은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도시의 빛은 단순히 풍경을 비추는 조명이 아니라,그 안에 시간의 깊이와 사람들의 감정이 겹쳐진다.여행자라면 꼭 걸어봐야 할 서울의 밤길.그중에서도 빛과 물, 역사와 일상이 어우러진4곳의 야경 명소를 소개한다.서울의 ‘밤의 얼굴’을 만나볼 수 있는 곳들이다. 1. 롯데타워와 석촌호수의 야경 송파구 잠실에 위치한 롯데월드타워는서울의 랜드마크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밤이 되면 타워 꼭대기부터 천천히 불이 들어오고,그 빛은 곁에 있는 석촌호수의 물 위에 아름답게 반사된다.호수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조용하면서도 안전하고,빛과 물, 그리고 도시 건축이 어우러진 장면은사진보다 직접 눈으로 봤..

여행과 여유 2025.04.07

도시 위에 피어난 연등의 빛 – 부처님 오신 날, 서울에서 만나는 고요한 축제

밤 길을 지나던 중, 익숙한 거리에서 익숙하지 않은 장면을 마주했다.불 꺼진 건물 외벽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연등들이하나둘 불을 밝히며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었다.붉은 등, 노란 등, 초록 등, 파란 등…알록달록한 불빛들이 도시의 단단한 외관을 조용히 감싸고 있었다.어떤 장식보다 소박한 연등은곧 다가올 부처님 오신 날을 알리고 있었다.부처님 오신 날은 음력 4월 8일,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는 불교의 가장 큰 명절이다.이 시기에는 전국의 사찰뿐 아니라도시 곳곳에서도 연등이 걸리며불교문화의 상징이자 계절의 풍경이 되어준다.서울의 여러 거리에도 연등이 하나둘 피기 시작했다.도로 위 전봇대 사이에, 오래된 건물의 벽면에,또는 공원의 나무 가지마다 등불이 매달린다.이 도시의 밤은 그렇게 조금씩..

여행과 여유 2025.04.07

서울의 밤, 석촌 호수에서 마주한 봄빛 -봄은 이미 출발했다.

서울의 봄이 시작되는 길목,나는 어느 저녁을 먹은 후잠시 석촌호수로 향했다.낮의 분주함이 서서히 가라앉고도시의 불빛들이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호숫가에 닿자마자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건하늘 위로 솟아오른롯데월드타워였다.분홍빛 조명을 머리에 이고 선 그 마천루는어두워지는 하늘 속에서도시선을 압도하며 빛나고 있었다.내가 사는 도시,내가 자주 지나는 이곳이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품고 있다는 걸새삼스럽게 느꼈다. 조금 더 발걸음을 옮겨석촌호수 쪽으로 내려가니물가를 따라조명 아래 벚꽃이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완전한 만개는 아니었지만오히려 그 여백이도시의 불빛과 어우러져더 특별한 장면을만들어내고 있었다.물 위로 비친 불빛은마치 수채화의 번지기 기법처럼조용히 퍼져나갔다.LED 조명을 받은 벚꽃은너무도..

여행과 여유 2025.04.06

목련과 개나리, 봄날의 기억을 꺼내다

봄은 언제나 나를 사색하게 한다.찬바람이 물러가고, 가지마다 생명이 움트는 이 시기.나는 어김없이 어린 시절의 봄날을 떠올린다.햇살 아래 피어난 목련과 개나리는 그때의 추억을 불러오는 열쇠처럼내 안 깊은 곳에서 시간을 되돌린다.기억 속의 봄은 언제나 환했다.개나리의 노란 물결이 골목길을 따라 흐르고,하얗고 고고한 목련은 하늘을 배경 삼아 조용히 피어 있었다.그 꽃길을 엄마의 손을 잡고 걸었던 날,그 장면은 내 안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풍경이다.목련 – '숭고한 사랑', '고귀함'목련은 내게 늘 어떤 절제된 품위를 떠올리게 한다.두툼한 꽃잎이 순백의 빛깔로 하늘을 향해 피어나는 그 순간,나는 삶에서 고결함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목련은 사랑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마음을 지..

여행과 여유 2025.04.06

도시의 등불

도시의 등불아직 해가 다 저물기도 전, 피아노 학원 벽등은 이미 밝고 있었다. 조금은 익숙한, 낮은 터치의 선율과 엔틱 한 조명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다정하게 어울렸다. 이 도시의 냉기와 우울을 조금이라도 더 밀어내려는 듯, 그 빛은 밀물이고, 바람이다. 파스텔톤의 벽은 너의 고백을 새기라는 여백이고, 무의식의 세계로 통하는 열린 문이다. 벽등은 더 이상 ‘빛’이 아니라, 내 피부에 와닿는 은불, 함께 주고받는 체온이다. City's Lantern Before the sun had fully set, the piano academy's wall lamp was already aglow. A somewhat familiar, soft-touch melody and the antique light harmo..

여행과 여유 2025.04.04

골목 안쪽의 따뜻한 발견, '오누이 부대찌개' – 숨겨진 우리 동네 맛집

날이 풀리니마음도 따라 풀린다.해가 환히 비추던 봄날의 어느 오전,친한 동생과 함께 간단한 아점을 먹기로 했다.이른 점심을 먹으러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조용한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한 식당이 떠올랐다.자주 지나치긴 했지만‘저 안쪽까지 들어가야 하나?’ 싶은 위치라오히려 자꾸 미뤄지던 곳이었다.그날은 이상하게그 골목이 우리를 불렀다. 가게 이름은‘오누이 부대찌개’.위치부터가 예사롭지 않다.차가 잘 다니지 않는 조용한 주택가 골목 한가운데,눈에 띄지 않는 위치인데도 단골이 많은 집이다.**“한 번 가본 사람은 꼭 다시 온다”**는 말이실감 나는 곳이다. 메뉴는 단순하지만 강력하다.기본 **‘오누이 부대찌개’**와‘우삼겹 부대찌개’.각종 사리와 재료도 다양하게 추가할 수 있다.떡, 가락국수, 라면, 콩치즈..

여행과 여유 2025.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