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복사꽃이 가장 먼저 찾아왔다.
긴 겨울 끝, 아직 차가운 벽을 등지고
조심스럽게 가지마다 붉은 꽃망울을 터뜨린다.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잊고 있던 시간 속에서
복사꽃은 조용히 속삭인다.
"다시 시작해도 괜찮아."
노란 개나리가 뒤따랐다.
저녁 햇살이 스미기 시작한 골목 어귀,
담장 너머로 번지는 환한 노란 물결.
서툰 봄빛과 서툰 마음이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처럼,
개나리는 겨울을 지나온 모든 존재에게
기쁨을 선물한다.
라일락은 조금 늦게, 그러나 잊을 수 없는 향기로 온다.
투명한 하늘 아래, 작은 보랏빛 손길들이
오래전 첫사랑처럼 다가온다.
무심히 스쳐도 잊히지 않는 향기.
라일락이 피어오르면,
그 시절 우리도 다시 피어난다.
스노볼은 푸른 기억처럼 고요히 모습을 드러낸다.
연둣빛 공기 속에 맺힌 작은 구슬들.
한 알 한 알, 햇살을 머금고
정성스레 세상을 환히 채운다.
스노볼 아래를 지날 때마다
한참을 멈추게 된다.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투명해지는 순간.
그리고, 제라늄
짙어진 초록 사이로 불쑥 고개를 내미는 선명한 붉음.
꽃집 화분이지만 그 자태는 너무 아름답다.
제라늄 앞에서는 잠시 멈춘다.
결심처럼 단단하고, 위로처럼 따뜻한 색.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도, 꿋꿋이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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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도시를 피우다 – 거여동 꽃길 산책과 저녁의 기억
봄은 시나브로 다가온다.차가운 바람이 누그러지고, 코끝에 닿는 공기의 향이 달라질 때쯤,도시의 어느 골목에서도 봄은 제 존재를 잔잔히 드러낸다. 며칠 전, 친구와 저녁을 먹기 위해 거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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