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입 – 물처럼 살아가는 법
물은 흐르면서도 고요하고, 고요해 보이면서도 끊임없이 흐른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말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기피하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
부드럽게 흐르지만 장애물을 만나면 돌아가고, 끝내 바다에 이른다.
이 유연함과 겸손, 그리고 부드러움 속의 강함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삶의 원리다.
2. 정중동 (靜中動) – 고요 속의 움직임
흐르는 강물의 표면은 잔잔해 보인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는 방향을 잃지 않은 속도 있는 흐름이 이어진다.
속도의 시대에 살아도, 겉은 느리게 느껴지는 사람이나 삶이 있다.
그러나 그 안쪽에서는 방향을 점검하고, 계획을 세우며, 다음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다.
정중동(靜中動)은 바로 이런 상태다 — 겉의 평온함 속에 숨은 생존의 에너지다.
3. 동중정 (動中靜) – 움직임 속의 고요
반대로, 거센 물살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삶 속에서도 내면의 고요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혼란과 변동 속에서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는 급류 속에서도 일정한 방향을 유지하며 흐르는 강줄기와 같다.
동중정(動中靜)은 외부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게 하는 내면의 닻이다.
4. 사상의 뿌리 – 유가·도가·불가가 말하는 균형
이 사상의 뿌리는 유가, 도가, 불가를 아우르는 동양 철학 전반에 있다.
『논어(論語)』에는 이렇게 쓰였다.
“군자는 중용을 따른다(君子中庸)” — 과하지 않으며, 부족하지도 않은 삶의 태도.
그 중심에는 바로 ‘정중동’의 균형이 놓여 있다.
『장자(莊子)』에서는 더 나아가
“지인은 물에 빠져도 익사하지 않고, 불에 타도 상하지 않는다(至人之用心若鏡)”라 하였다.
이는 격동의 삶 속에서도 마음이 고요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용(中庸)』에서는 이렇게 정의한다.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가 중(中)”
“그 감정들이 일어난 뒤에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화(和)”
이 두 구절은 ‘정중동’과 ‘동중정’을 모두 설명하는 대표 문장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를 ‘동정 일여(動靜一如)’라 하여, 움직임과 고요가 본래 둘이 아니라고 보았다.
수행의 궁극은 외부의 요동에도 내면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다.
5. 미학적 확장 – 여백의 힘
동양의 정서와 철학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조화와 균형을 삶의 이상으로 삼았다.
동양미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여백(餘白)’ 또한 단순한 공백이 아니다.
그 안에는 정적이고도 역동적인 생명력이 숨 쉬고 있다.
그림 속 여백이 시선을 이끌고, 음악 속 쉼이 흐름을 완성하듯,
정중동과 동중정은 삶 속 여백을 살아 있는 힘으로 바꾼다.
6. 결론 – 물의 이치와 시대의 생존
흐르는 물이 그러하듯, 고요와 움직임은 서로를 완성한다.
정중동은 다음을 준비하게 하고, 동중정은 현재를 지키게 한다.
속도가 곧 생존의 척도로 여겨지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이 두 힘을 동시에 길러야 한다.
물처럼 유연하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부드러움 속에 강함을 품을 때,
흐름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심연 같은 평온과 움직임은 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참고자료
- 『도덕경(道德經)』 제8장, 노자(老子)
- “上善若水(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 상선약수: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 『논어(論語)』, 공자(孔子)
- “君子中庸”
- 군자는 중용을 따른다.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조화의 상태를 중시함.
- 『중용(中庸)』
-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태가 중(中),
감정이 일어난 뒤에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화(和).
- 『장자(莊子)』, 대종사 편(大宗師篇)
- “至人之用心若鏡”
- 지인의 마음 씀은 거울과 같아, 외부 상황에 흔들리지 않음.
- 『선종어록(禪宗語錄)』
- “動靜一如”
- 움직임과 고요함이 본래 둘이 아님.
- 동양미학의 여백(餘白) 개념
- 회화·서예·건축 등 전통 예술에서 여백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정적 속의 역동과 가능성을 담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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