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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질문 – 성취가 아닌 성찰의 시간
젊음의 질문, 성취의 속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참으로 다난했던 시간이었다.
출생부터 학업에 전념하여 대학에서 전공을 하고,
사회에 나아가 무언가 이루겠다는 쉼 없는 열정을 보이던 때.
결혼과 출산, 가족 부양과 자아실현 사이의 고민들.
시간은 끝없이 주어진 듯했고, 세상은 광활한 운동장이었다.
이때의 하루는 경기처럼 치열했고,
그렇게 젊음은 밤이 와도 내일을 더 준비해야 하는 듯 숨 가빴다.
노년에 다다른 순간
그러나 지금 시간은 다르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오랜 기억들을 떠올려 본다.
대학 합격이 주어지던 날은 세상의 문이 활짝 열린 것처럼 기쁘기만 했다.
자식의 출산 때는 여태껏 가져보지 못한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때론 실망했고, 때론 분개하며 술에 의존했던 시절들도 있었다.
매번 좌절 속에서도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발버둥 쳐야만 하는 시간들이었다.
이제 질문은 바뀐다.
“무엇을 더 이룰 것인가”에서
“내가 살아온 날들은 어떤 의미였는가”로.
죽음과 삶을 마주하는 시선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우리는 젊을 땐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고, 늙어서는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한다.”
그러나 지금 느껴보고 생각하면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시기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삶을 가장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시기다.
또 지금 주어진 나머지 삶은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살아 보자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 성취가 아닌,
느리지만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들에 대한 용기와 시작.
어떤 성취보다는 후손들에게 유익한 것을 남기고 싶은 마음으로
나머지 시간을 채우고 싶어진다.
몽테뉴는 말했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일부다.”
그에게 죽음은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태어남과 성장, 기쁨과 슬픔이 모두 인생의 일부이듯,
죽음 또한 그 연속선 위에 놓인 한 장면이었다.
따라서 노년의 질문은 단순히 종착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고 채워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속도에서 방향으로
젊음은 속도에 취해 달려왔다.
옳은지, 중요한 지보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멀리, 얼마나 높이 가는지가 더 중요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면 속도를 멈추고 방향을 묻게 된다.
지나온 걸음이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에게도 유익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내면으로 향하는 성찰
노년은 세상의 소음보다
자신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인 것 같다.
차를 우려내는 순간,
책장 속 오래된 문장을 다시 펼쳐보는 순간,
산책길의 불어오는 바람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는 순간,
이 평범한 장면들에서
오히려 삶의 의미를 느끼게 된다.
노년에는 누군가와 대화에서 논쟁하며
자신을 드러냈던 시기와는 달리,
혼자 사색하고 행동하며
자신만의 시간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질문 자체가 답이 되는 시간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오래된 물음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질문을 끝까지 품고 가는 태도,
때때로 다시 던져보는 행위 자체가 답일 수 있다.
노년은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삶을 정리하는 듯하면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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