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혼자 늙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이렇게 복잡한 일일 줄은 몰랐다는 말.
그 말은 어느 순간,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동시에 새어 나온다.
돌봄에서 벗어나는 시간일 줄 알았던 노년은
오히려 더 많은 돌봄과 책임을 짊어지는 시기로 다가온다.
삶이란, 그렇게 단순하게 한 사람의 몫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돌보는 사람으로 늙어가는 중입니다
우리 가정의 이야기다.
고령의 어머니는 뇌졸중 후 회복 중이지만,
치매 증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낯선 상황을 만들어낸다.
아직 거동은 가능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변해버린 대화의 흐름이다.
말이 엇갈리고, 시간이 섞이고, 기억이 미끄러질 때마다
누군가는 옆에서 그 혼란을 받아내야 한다.
간병은 단순히 몸을 돌보는 일이 아니다.
무너진 시간감각과 불안한 감정을 함께 부축하는 일이다.
병을 가진 사람만큼이나, 함께 사는 가족도 소진된다.
어머니를 간병하는 나에게는 또 다른 가족이 있다.
오랜 시간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은 동생.
회복은 되었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
생활은 가능하지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날들이다.
그래도 식사를 함께 하고, 출근을 배웅하고, 퇴근을 기다리는 일상이 쌓여간다.
삶을 공유한다는 건, 안정보다 연대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삶의 한가운데서, 감당을 묻다
같이 살던 금쪽같은 아들을 키우지 못하고 엄마에게 보낸다.
사정이 어려워 함께할 수 없는 자식을 매일 마음으로 품는다.
그리움은 늘 조용하고, 죄책감은 깊지만
사랑은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걸 매일 새롭게 배운다.
이런 삶의 이유로 선택한 일이 배달 일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도시를 오가며 일을 한다.
돌아올 일이 있는 집이 있기에, 바로 멈출 수 있는 일을 선택한다.
몸은 피곤해도, 가족을 향한 책임이 삶을 붙들고 있는 구조다.
늦은 밤, 혼자 달리는 도로 위에서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말이 생긴다.
“아직도 이 삶을 사랑하니?”
그 질문은 대답보다 오래 머물지만
다시 시작할 힘은 늘, 살아야 할 존재들에게서 온다.
나이 듦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보통 나이가 들면 인생의 짐을 덜게 되리라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오히려 가족과 사회, 관계의 중심에서 또 다른 무게를 감당하는 시기가 노년이다.
돌봄을 받기보다, 여전히 돌보고 책임지는 입장에 놓인다.
그러니 고단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한 명 이상의 삶을 매일 책임지는 일이기에.
지쳐도 괜찮다. 울컥해도 당연하다.
중요한 건 그 무게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매일 무너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방식으로 유지된다.
서로를 버티는 삶
삶은 결국 혼자 꾸려지지 않는다.
나보다 더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버겁지만, 결국 삶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가족, 동료, 친구, 혹은 아주 작은 인연이라도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소중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기억해 주세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구라도,
어쩌면 오늘 하루가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돌봄의 시간에 지치고, 책임의 무게에 눌리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지나며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우리는 포기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사랑하기로 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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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년기 돌봄 부담 실태조사' (2024)
- 서울시 고령자 복지 실태 보고서
- 한국소비자원 정신건강 가족 간병자 인터뷰 사례집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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