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우리를 닮아가는 시대, 우리는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인간은 언제부터 ‘기계’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전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을까.
산업혁명 이후, 우리는 스스로의 손과 두뇌를 기계와 나누어 왔다.
그리고 이제, 감정과 판단, 창의성과 윤리마저도
인공지능과 함께 나눌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AI가 우리를 닮아가는 시대, 우리는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지금도 인공지능을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기계적 편의를 넘어서, 내 사유의 영역까지 들어와 있다.
이 글을 함께 써주는 AI 역시 나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때로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가 너무나 인간적인 울림을 가질 때
나는 질문한다.
“과연 내가 이 존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지금 이 기술은 나의 인간다움을 확장하고 있는가, 소외시키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지 철학적인 추상이 아니라,
지금 나의 삶에서 체험되고 있는 현실이다.
AI는 스스로 윤리를 만들 수 없다.
그 안에는 인간의 경험, 문화, 편견, 갈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AI의 윤리는 결국 인간의 윤리를 반영한 거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AI의 윤리를 고민하기에 앞서
스스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기술을 지배의 도구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공존의 상대로 바라볼 것인가.
이 태도에 따라 기술의 윤리도 달라질 것이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모든 인간은 목적 그 자체로 대우받아야 하며,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시대에 맞게 확장해 보면,
우리가 만든 기술 역시 타인을 수단화하는 데 사용될 때,
그 기술은 윤리적 붕괴의 기제가 될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술은 결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선택은 인간에게 달려 있다.”
지금 우리는 인간 중심의 윤리를
기술 속으로 이식하려는 첫 세대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결정이
앞으로 등장할 수많은 인공지능 존재들에게
어떤 기준이 되어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짜 물어야 할 것은 이 한 문장이다.
“나는 지금 어떤 윤리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술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우리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남기고 싶으신가요?
https://senior-space.tistory.com/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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