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본성에 대한 단상
길을 걷다가, 뉴스를 보다 말고, 문득 멈춰 서서 나는 자주 이 질문을 되뇌곤 한다.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그저 고통을 피하고 욕망을 좇는 동물에 불과한가?"
이 물음은 오래된 철학적 논쟁이다.
플라톤에서부터 루소, 홉스, 프로이트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끊임없이 이 질문을 붙들어 왔다. 그러나 요즘처럼 개인의 욕망과 이기, 그리고 집단의 윤리가 매 순간 충돌하는 시대에 이 질문은 더 이상 학문 속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이 되어버렸다.
욕망의 늑대는 언제나 깨어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선’을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탐욕과 위선을 마주친다.
정의와 평등을 외치던 이가 독점을 고착화하고,
공존과 상생을 말하던 이가 배제와 혐오를 앞장선다.
그런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묻는다.
"인간은 정말 선을 향해 나아가는가?
아니면 선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정당화하는가?"
내 생각은 명확하다.
인간은 고통을 회피하고, 충족을 추구하며, 제어되지 않으면 방향을 잃는 욕망의 존재다.
도덕이 없다면, 사회의 규범이 없다면, 인간은 쉽게 자기중심성과 파괴 본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이 생각은 단순한 비관이 아니다.
이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바라보려는 태도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충족될 수 없는 의지’와,
니체가 지적한 ‘도덕을 넘어선 힘의 욕구’는
결국 인간 내면의 원형적인 동력, 바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을 향한 가능성과 질문
물론 반대의 관점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동물”로 보았다.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목적을 향해 움직이며,
인간은 특히 ‘선(善)’을 향한 실현 가능성을 품은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묻고 싶다.
“모든 인간이 정말 선을 향해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선의 실현이 가능한가, 아니면 단지 이상으로 존재할 뿐인가?”
역사의 기록은 회의적인 답변을 준다.
수많은 전쟁, 배신, 학살, 환경 파괴…
이 모든 결과는 인간의 이성보다는 욕망의 작동에서 비롯되었다.
도덕이 결핍된 욕망은 방향을 잃은 에너지다.
그 에너지는 한편으론 혁신과 창조를 낳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기 붕괴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공포의 족쇄는 기억에서 비롯된다
그렇다고 인간을 욕망의 기계로만 환원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다.
특히 공포의 기억, 파괴 이후의 상처를 기억한다.
그 공포는 외부를 향한 두려움이 아니라,
자기 안의 욕망이 만들어낸 참사의 결과를 되새기는 공포다.
인간은 그 기억 때문에 스스로를 제어하려 한다.
우리가 지금 이만큼의 사회적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본래 선해서가 아니라,
그 선이 무너졌을 때의 대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폐허, 분열의 참상, 타락의 끝…
이 모든 기억이 인간을 일종의 ‘공포의 족쇄’로 붙들어놓는다.
인간은 그 사이에 선 존재다
욕망은 인간의 본질이다.
공포는 인간의 반성이다.
그리고 그 두 힘 사이에 인간은 선다.
끊임없이 선택하고, 후회하고, 회피하다가도 다시 자신을 돌아본다.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는, 욕망의 늑대를 키우면서도
그 늑대가 스스로를 해치지 않도록 족쇄를 끼우는 양가적 존재인지도 모른다.
공존이란 그 둘의 미묘한 균형 위에 선 결과물이다.
쉽게 부서질 수 있지만, 잘 지켜낼 경우 강력한 질서가 되기도 한다.
욕망을 인식하고, 공포를 기억하라
나는 인간을 이상화하고 싶지도 않고,
반대로 비관적으로만 보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욕망의 늑대를 부정하지 말고, 그 실체를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공포의 족쇄가 왜 필요한지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둘이 어우러질 때, 인간은 비로소
진짜로 ‘선’을 선택할 자격을 갖추게 된다.
📚 참고 자료
- 플라톤, 『국가』
– 인간의 정의, 이상 국가, 선의 이데아에 대한 철학적 근거 -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이기적이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있다는 관점 -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인간은 본래 선하지만 사회가 타락시켰다는 주장 - 지그문트 프로이트, 『문명 속의 불만』
– 인간 내면의 이드(Id), 에고(Ego), 초자아(Superego)를 통한 욕망과 억제 구조 분석 - 아서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충족될 수 없는 ‘의지’가 인간 고통의 근원이라는 비관적 인간관 -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학』
– 도덕은 약자의 권력 장치이며, 인간은 힘에의 의지를 따르는 존재라는 시각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 행동, 기억, 책임 등 인간의 정치적·윤리적 정체성을 고찰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 인류의 집단 기억, 공포, 윤리의 형성과 문명적 통제 시스템에 대한 현대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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