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지옥의 문을 처음 본 날 (Rodin's Gates of Hell 앞에서)

만샘 2025. 6. 3. 18:57
"필라델피아 로댕 미술관에 설치된 『지옥의 문』. 총 180개가 넘는 인물상이 부조로 새겨져 있으며, 상단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앉아 고뇌에 잠겨 있다." 출처: Association for Public Art – The Gates of Hell

 

지옥의 문 앞에서 처음 생각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늘 사진으로 보던 조각상에 불과했다.
도서관의 예술 서적 속, 시험지 문제의 보충 이미지처럼 존재하던 익숙한 상이었다.
대학 2학년,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을 찾았을 때
그 조각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공원 안에 자리한 국립서양미술관 앞.
(그 미술관은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건물로도 유명하다.)
거기, 나는 처음으로 그 ‘생각하는 사람’을 마주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조각은 홀로 존재하는 독립 조각이 아니었다.
‘생각하는 사람’은
거대한 조각 군상인 「지옥의 문」의 일부였다.
그는 무릎을 꿇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지옥의 입구 상단에 앉아 있었고,
그 아래에는 고통받는 수많은 인간 형상들이
몸을 비틀며 묶여 있었다.
내가 아는 세계는 거기서부터 부서지기 시작했다.
 

문을 만들다: 로댕과 단테, 그리고 고통의 형상화

로댕이 ‘지옥의 문’을 만들게 된 건 1880년,
프랑스 정부가 장식예술박물관 입구를 위한 청동 문 제작을 의뢰하면서였다.
그는 그 작업에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선택했다.
단테의 지옥은 단순한 종교적 형벌의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인간의 죄와 감정, 무력함이 형상화된 내면의 세계였다.
로댕은 이 지옥을 형태로 번역하려 했다.
그는 단테의 구절마다 조각으로 대응했고,
각 인물의 고통을 부풀어진 근육, 비틀린 자세, 움켜쥔 손으로 표현했다.
그 결과 ‘지옥의 문’은 단순한 입구가 아니라
고통과 집착, 절망으로 뒤얽힌 인간의 총체적 풍경이 되었다.
그 지옥문 위에는
한 인물이 웅크린 채 무릎을 꿇고 있다.
세상을 향해 몸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등을 돌려 도망치는 것도 아니다.
그는 단테 자신을 상징한다고도 하고,
지옥 전체를 바라보는 ‘사유하는 인간’의 메타포라고도 해석된다.
고통의 형상들 위에 홀로 생각에 잠긴 존재.
그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비명을 바라보며
무력하게, 그러나 끝없이 고민하는 자로서 거기 앉아 있다.
 

"오귀스트 로댕, 『칼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 1884–95년. 백년전쟁 당시 자신들의 생명을 내어주고 도시를 구하고자 했던 여섯 명의 시민을 묘사한 이 조각은, 영웅적인 결단과 고뇌가 교차하는 인간의 숭고한 순간을 담아낸다." 이미지 출처: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Open Access Collection

 

고개 숙인 인간들: 칼레의 시민과 발자크

‘지옥의 문’에서 벗어나도
로댕의 조각은 언제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칼레의 시민』(Les Bourgeois de Calais)**이다.
1347년, 백년전쟁 당시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를 점령하기 위해 도시의 지도자 여섯 명이
자발적으로 목숨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로댕은 이 전설을 통해
영웅적 희생보다 ‘결단 앞에 선 인간의 흔들림’을 조각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발은 무겁고, 눈은 흔들린다.
손을 뻗지도, 외치지도 않는다.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가.

로댕은 ‘결정의 고통’을
조용히, 그러나 확고하게 형상화했다.
그 다음 작업은
프랑스 문학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기념상이었다.
그는 무려 7년을 이 조각 하나에 몰두했고,
결국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형체를 잃은 덩어리”라는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조각이
**“인간의 정신을 형태 없이 담아낸 최초의 시도”**로 평가받는다.
로댕에게 조각은
사실을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정신을 드러내는 언어였다.

 

"오귀스트 로댕, 『생각(La Pensée / Thought)』, 1895년 모델링, 1900–1901년 대리석 조각. 깊은 고뇌에 잠긴 여인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사유를 응축한 작품. 모델은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로 알려져 있으며, 로댕의 조각 중 가장 절제되고 순수한 형태로 평가된다." 이미지 출처: Rodin Museum, Philadelphia

 

조각보다 더 깊었던 균열: 까미유 클로델

로댕의 삶에
조용히, 그러나 깊게 스며든 인물이 있었다.
조각가 까미유 클로델.
그녀는 스무 살 무렵 로댕의 제자로 들어왔고,
곧 그의 조각 작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함께 모델을 고르고, 손을 맞잡아 흙을 다루었고,
때로는 작품의 일부분을 독립적으로 완성해낼 만큼
둘의 협업은 치열했고도 예민했다.
그리고 곧,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서로를 완성시키는 관계가 아니라,
조각처럼 파내고 갈아내며 상처로 남는 관계
가 되었다.
로댕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지 않았고,
까미유는 점점 그림자 속으로 밀려났다.
세간의 시선은 로댕의 작업 뒤에 그녀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파리 변두리 작업실에 틀어박혀
조각 속에서 분열과 저항, 파열을 새겨 넣기 시작했다.
그녀의 조각 ‘나이 든 여인’, ‘물러나는 인물’에는
고통과 인내, 존재의 절벽 앞에 선 한 인간의 흔들림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그리고 로댕 역시
까미유와의 이별 이후로 만든 작품들 속에
그녀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 위에 홀로 웅크려 있다.
아마 그 형상은
자기 안의 깊은 균열을 끝내 꺼내지 못한
로댕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인간의 무게

우리는 왜 생각해야 하는가.
생각은 삶을 해명하려는 시도지만,
그 해명이 언제나 우리를 구원해주는 건 아니다.
생각은 번뇌를 만들고,
반복되는 후회와 불확실 속에 우리를 갇히게도 한다.
질문은 많아지지만, 대답은 좀처럼 도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각한다.
그 고통 속에서
한 발 더 깊이 들어가며,
스스로를 조금씩 이해해보려 한다.
생각은 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말하는 조각이 아니라,
말 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남기는 형상이다.
그 앞에서  묻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오늘도 우리 모두는 
그 물음과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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