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관계 – 존재를 설정하는 힘

만샘 2025. 6. 19. 02:16

인간과 동물의 경계도, 요구도 없는 평화로운 관계의 장면 이미지 © jooriank / EyeEm → https://www.eyeem.com/u/joori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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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설정이다

우리는 흔히 ‘관계’를 감정, 유대, 소통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 관계란, 그것만이 아니다.
관계는 존재와 존재 사이의 ‘위치’와 ‘의미’를 결정짓는 설정의 힘이다.

자연, 사물, 기억, 신체, 기술, 시간, 무의식까지 —
인간 이외의 모든 것과도 관계는 성립된다.
그 모든 관계는 구조 위에 놓이며, 그 구조는 삶 전체를 지배한다.

관계는 의도적으로 설정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설정된다.
그리고 일단 설정된 관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누군가와 처음 마주하는 순간,
그 인상이 관계의 ‘위치’를 결정짓는다.
그것이 관계의 시작이고, 곧 구조가 된다.


무의식 속에서 반복되는 설정

관계는 대개 너무 이르게, 그리고 너무 무의식적으로 시작된다.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
사회가 부여한 역할,
“조율 없이, 일방적인 감정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누구인가’보다 ‘어떻게 위치 지어졌는가’로 살아간다.

문제는, 이 초기 설정이 반복되며 강화된다는 것이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는 늘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되고,
그 구조는 내 존재 전체를 하나의 패턴 안에 가둬버린다.

그렇게 관계는 연결이 아니라,
사유 없이 반복되는 설정값이 된다.

이런 관계는 고인 물처럼 시간이 갈수록 곪아가거나,
혹은 자각이 시작되면서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언젠가 터져버리고 말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으나 서로 단절된 관계 -직접 촬영 이미지


관계는 질서인가, 구속인가

이 구조는 강력하다.
한 번 설정된 관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반복되는 언어, 자세, 감정의 패턴은
나를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하게 만들고,
결국 나 자신마저 그 틀로 해석하게 만든다.

관계는 때로 나를 지탱하지만,
그만큼 나를 지워갈 수도 있다.
질서이자, 동시에 구속인 관계.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나-존재’처럼,
나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지만
그 세계가 나를 결정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그래서 관계 안에서 내 위치를 조망하고, 잘못됨을 감지했다면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관계는 연속성을 잃거나,
잘못 이어진 채 나를 잠식하게 될 것이다.


재설정은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결단

우리는 흔히 ‘인간관계’라는 말을 쓴다.
친구, 이웃, 동료처럼 타자와의 관계를 일컫는다.
그러나 똑같은 사람도, 상황과 시간, 장소에 따라 관계는 달라진다.
그리고 그 관계는 첫 대면 순간에 이미 설정되며, 이후 오랫동안 지속되기 쉽다.

문제는, 그 첫 설정이 나를 잘못 인식시키는 방식일 때다.
그 순간부터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 어긋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화되고,
결국 꼬임, 단절, 결별, 이혼 등 파국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관계는 때때로 재설정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존재의 붕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결단이다.

억압적인 관계, 무의식적 고정관념, 반복되는 상처의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고, 직시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는 선언은,
단지 신을 부정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과 인간 사이의 오래된 관계를 스스로 끊어낸 행위였다.
즉, 존재를 위한 관계 재설정의 철학적 예였다.


자각이 관계를 가능성으로 바꾼다

관계는 단순히 맺는 것이 아니다.
자각하고, 구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때,
그것은 배경이 아니라 나를 지배하는 구조가 된다.

그러나 자각하고 설정하는 순간,
관계는 억압이 아니라 존재의 가능성이 된다.
그때 비로소, 관계는 나를 규정하는 틀이 아니라
나를 구성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우리가 흔히 맺고 있는 관계들을
한 번쯤 재정립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도, 타자를 위해서도,
그리고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 아닐까.


참고 자료

  •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 세계-내-존재 개념을 통해 존재가 세계와 맺는 구조적 관계를 설명함.
  •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 신은 죽었다(Gott ist tot) 선언을 통해 기존 가치와 질서의 붕괴, 관계 재설정의 철학적 계기를 제시함.
  • 마르틴 부버, 『나와 너』
    – 인간 존재가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형성된다는 관계 중심 존재론의 고전.
  • 한병철, 『피로사회』
    – 현대사회의 효율 중심 관계 구조와 존재의 피로화 문제를 다룸.
  • 가브리엘 마르셀, 『존재와 소유』
    – 관계에서 존재가 소외되거나 대상화되는 과정을 비판하고, '타자와 함께 존재하기'를 강조함.

 

이 글은 삶의 핵심 키워드인 '관계'를 존재론적 관점에서 해석한 시도입니다.  아래 글들에서도 삶과 관계되는 사유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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