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21

봄, 도시를 피우다 – 거여동 꽃길 산책과 저녁의 기억

봄은 시나브로 다가온다.차가운 바람이 누그러지고, 코끝에 닿는 공기의 향이 달라질 때쯤,도시의 어느 골목에서도 봄은 제 존재를 잔잔히 드러낸다. 며칠 전, 친구와 저녁을 먹기 위해 거여동으로 향했다.평소 자주 다니던 거리였지만, 그날따라 눈길을 사로잡은 풍경이 있었다.길가에 놓인 화분들, 그 안에서 피어나는 꽃들이 유난히 생생하게 보였다. 꽃집 가판대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여인네 나들이 치장처럼 피어 있었다.진홍색 버베나, 자주색 로벨리아, 그리고 주황빛 한련화가 저녁이 다 되었는데도아침 인사처럼 생기 있었고,화분 옆에는 작은 둥근 잎사귀들이 봄기운을 머금은 듯 생기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그 앞에서 나는 꽃빛의 매혹에 빠져 한참을 서성였다.저녁 식사 메뉴는 생선구이를 시켰다.식사를 하며 짭짤한 구이..

여행과 여유 2025.04.12

말 없는 공감의 시대를 꿈꾸며 – 텔레파시 기술과 공존의 윤리

말하지 않아도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고, 설명하지 않아도 아픔이 전달될 수 있는 시대 우리는 지금,손끝으로 활자를 쳐야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하지만 마음은 언어보다 빠르고,진심은 말보다 깊다.나는 믿는다.기술은 언젠가 이 간극을 메울 것이다.말하지 않아도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고,설명하지 않아도 아픔이 전달될 수 있는 시대가반드시 올 거라고.그것은 단지 '뇌파를 통한 통신'이 아니다.그건 새로운 형태의 존재 간 교감,즉 인간과 인간, 인간과 인공지능, 인간과 동물 사이의 감응을 가능하게 하는말 없는 공감의 언어일 것이다.그 기술이 실현되면,우리는 서로를 덜 오해할 수 있을 것이다.의도를 짐작하기보다 느끼게 될 것이고,고통을 바라보기보다 함께 견디게 될 것이다.동물도 말하리라."나는 ..

삶의 지혜 2025.04.12

성당 앞 목련, 봄이 왔다는 가장 순수한 신호

봄이 왔다, 그리고 그곳엔 목련이 피어 있었다서울의 주택가 한 골목을 걷다 보면문득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따뜻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아직은 차가운 나무 가지 위에하얗게 목련이 피어나는 그 장면은어떤 말보다 먼저봄이 도착했음을 알려준다.내가 이 장면을 만난 곳은오래된 벽돌 성당 앞이었다.나무 한 그루가 성당의 벽을 타고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었고,그 끝마다 피어난 목련꽃은정화된 영혼처럼 순백의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었다.성당 특유의 고요한 분위기와목련의 깨끗한 색감이 어우러져도심 속에서 잠시 멈추고 싶은 풍경이 되었다.봄은 늘 소란스럽게 찾아오지 않는다.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우리의 일상 한편에 스며든다.그중에서도 목련은언제나 봄의 가장 첫 문장을 써 내려가는 꽃이다.강한 햇살 없이..

여행과 여유 2025.04.11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마천시장, 오늘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마천시장, 오늘도 사람들로 북적인다주말임에도 마천시장은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좁은 골목 사이를 따라 이어지는시장 길에는 크고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좌우로 펼쳐진 가판대에는형형색색의 먹거리와 생활용품이빈틈없이 놓여 있다.사람들은 멈춰 서서 물건을 고르거나,주인과 흥정을 하며천천히 걸음을 옮긴다.이곳은 거여, 마천, 오금, 방이동 등인근 지역 주민들이 자주 찾는생활밀착형 전통시장이다.마트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필요한 것을 단골처럼편하게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장을 보러 일부러 찾는 사람도 많다. 오늘 시장에 온 목적은 분명했다.집에 나물 반찬이 떨어졌고,오래간만에 '옛날 통닭'이 먹고 싶기도 했다.그중에서도 날개 부위는가장 좋아하는 부분인데,가게 앞에 갓 튀겨 낸 통닭이..

여행과 여유 2025.04.10

성내천, 봄 날의 꽃길을 걷다 – 커피 한 잔과 함께한 조용한 산책

햇볕이 좋았다.유난히 쨍하지도, 미세먼지가 껴 있지도 않은,그냥 걷기에 딱 좋은 봄날. 친한 동생과 약속을 맞춰커피 한 잔을 들고 성내천을 함께 걷기로 했다.출발점은 ‘산체스커피’.요즘 SNS에서 유명세를 타면서한참을 줄 서야 겨우 커피를 받을 수 있는 곳인데,이 날은 운이 좋았는지 비교적 금방 커피를 손에 쥘 수 있었다.라테 한 잔, 블랙 아이스커피 한 잔.손안에 따뜻함과 시원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성내천은 한강의 지류이자서울 동남부, 송파구와 강동구 사이를 잇는 도시 속 자연 하천이다.과거에는 오염된 물길이었지만, 생태복원 사업을 통해이제는 사람들이 걷고, 자전거를 타고, 꽃과 하늘을 바라보며조용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입구는 여러 곳으로 열려 있어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스며들 ..

여행과 여유 2025.04.09

성당,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는 순간 – 오금동에서 마주한 작은 기억

밤 산책 중이었다.골목을 따라 조용히 걷던 중,고개를 들자 조용히 불을 밝힌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들어왔다.낯이라면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었을 풍경이었지만,밤은 전혀 다른 모습이라 시선이 저절로 그곳을 향했고 LED 조명으로 설치된 스테인드 글라스 느낌의 조형물은성당 건물 전체를 하나의 빛나는 설치미술처럼 보이게 했다. 벽돌로 쌓인 외벽 위를 하늘을 향해 고개 들어 쳐다본 순간마치 잡지 표지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문득 오래전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어릴 적, 외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갔던 -기억도 가물한 성당의 풍경.향 냄새, 촛불, 그리고 조용히 기도하던 사람들.지금은 특정 종교를 따르지 않지만그때의 고요함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빛으로 지은 창,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미학..

여행과 여유 2025.04.08

서울 야경 산책 – 올림픽 공원에서 만나는 조용한 빛과 공연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픽공원은낮에도 걷기 좋은 곳이지만,밤 산책이 주는 특별한 분위기는 따로 있다.도심 속에 넓게 자리한 이 공원은‘둘레길’을 중심으로 잘 정돈된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가볍게 걷기에도 좋고, 음악을 들으며 걷기에도 무리가 없다.특히 야간에는 주요 조형물과 입구, 나무들이 조명으로 밝혀져하루의 고단함을 정리하기에 제격이다.사진 속 장면은 올림픽공원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세계평화의 문’을 저녁 산책 중 마주한 순간이다.붉은 조명이 천장을 감싸며그림자처럼 바닥에 떨어지고,멀리서 보이는 무대 쪽에서는작은 야외 공연이나 거리 퍼포먼스가 펼쳐지기도 한다.올림픽공원 밤 산책이 좋은 이유는공간의 크기만큼이나 여유로운 시선과무리 없이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조용히 걸으며 음악을 듣기도 좋..

여행과 여유 2025.04.08

사진 한 장이 삶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인생 2막, 다시 나를 찾는 중

오랫동안 학원을 운영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원을 그만하게 되었다.아직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사정이기에 이거 저거 해야만 했고,무언가 새로 시작해 볼 수 있다는 것보다는앞으로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더 컸다.불안과 우울감으로 하루하루가 편하지 않았다.늘어나는 나이와 줄어드는 여유 사이에서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감이 안 잡혔다.지금도 그 불안과 초조함은 잔존하지만,그래서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시도해 봤다.블로그도 시작했고,이모티콘도 그려보고,사진도 찍어봤고,GPT 인공지능이라는 낯선 기술도 접해 보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당연히 수익이 목적이었다.생계와 연결되지 않으면마음에 여유를 주기가 어려우니까.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사진을 찍는 시간이 이상하게 기다려졌다.‘이걸로 뭘 벌 수..

여행과 여유 2025.04.08

서울의 밤, 그 풍경을 걷다 – 여행자를 위한 야경 명소 4선

서울의 밤, 그 풍경을 걷다 – 여행자를 위한 야경 명소 4선서울은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도시의 빛은 단순히 풍경을 비추는 조명이 아니라,그 안에 시간의 깊이와 사람들의 감정이 겹쳐진다.여행자라면 꼭 걸어봐야 할 서울의 밤길.그중에서도 빛과 물, 역사와 일상이 어우러진4곳의 야경 명소를 소개한다.서울의 ‘밤의 얼굴’을 만나볼 수 있는 곳들이다. 1. 롯데타워와 석촌호수의 야경 송파구 잠실에 위치한 롯데월드타워는서울의 랜드마크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밤이 되면 타워 꼭대기부터 천천히 불이 들어오고,그 빛은 곁에 있는 석촌호수의 물 위에 아름답게 반사된다.호수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조용하면서도 안전하고,빛과 물, 그리고 도시 건축이 어우러진 장면은사진보다 직접 눈으로 봤..

여행과 여유 2025.04.07

욕망의 늑대와 공포의 족쇄 – 인간 본성에 대한 단상

욕망의 늑대와 공포의 족쇄 – 인간 본성에 대한 단상나는 늘 이런 질문을 품게 된다.인간은 본래 선을 지향하는 존재일까?혹은 고통을 피하고 욕망을 따르는 존재일까?이 질문은 철학사 내내 반복되어 온 고전적인 물음이다.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선더욱 날카롭고 현실적인 의미로 되돌아온다.누군가는 정의를 말하면서 탐욕을 숨기고,누군가는 공존을 외치면서도독점과 배제를 일삼는다.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어디에 있는가?내 생각은 이렇다.인간은 고통을 벗어나 충족을 향해 움직이는 성향이 있고,도덕이 없다면 어디로 튕길지 모르는 욕망의 존재다.이것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다.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나의 시선이다.쇼펜하우어가 말한 ‘충족될 수 없는 의지’,니체가 말한 ‘도덕을 넘어선 욕망’과나는 맞닿아 있..

삶의 지혜 2025.04.07